NH농협 나눔사랑

음성품바축제(2011년5월26일~29일)

장단가 2011. 5. 17. 11:24


 

 


최귀동(베드로)할아버지가 40여년동안 사랑을 실천했던
무극천 다리. 이 다리밑에서 40여년동안 남는 밥만 얻어먹다가 사랑을 실천하던 중 1976년 9월 10일 무극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와 만나다.
어느날 동네 사람들에 의해 다리 밑에서 쫓겨나 용담산 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하게 된다.
이 움막 앞에서 한 할아버지와 오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움막안에는 얻어 먹을 힘조차 없어 죽어가는 분들이 18명 살고 있었다. 이 움막 삶의 현장을 목격한 오신부는 주머니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 한 포대를 사서 손수 벽돌을 찍어 76년 10월 5일 교우들과 함께 기공식을 가진 후 76년 11월 15일 다섯칸 부엌 다섯칸의 건물에 이들을 입주시킨다.
카톨릭대상 (사랑부문) 수상
무극에서 부잣집 귀한 아들로 태어나 날때부터 귀동이라 불리웠던 대장부가 일본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끝에 정신병을 얻어 고국에 돌아와 보니그동안 부모님들은 아편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가정은 파산되어 갈 곳조차 없게 되어 무극다리 밑에 거처를 정하고 살면서 오갈 데 없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죽어가는 걸인들을 위하여 40여년간 남는 밥만 얻어 그들에게 나눠주었고, 죽으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 숭고한 사랑의 실천으로 86.2.15 가톨릭 대상(사랑부문)을 수상했으며, 부상으로 120만원을 받았다. 이에 따른 축하잔치가 2.16 무극성당에서 있었는데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 노건일도지사, 사단장, 교육감등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극국교 어린이 고적대의 밴드에 맞추어 카퍼레이드 후 주민들과 함께 축하식을 가졌다. 사진은 축하식에 참석한 내빈들과 함께 찍은 것.
90년 1월 4일 오후 1시 15분 평소 지병인 혈압이 재발하여 인곡자애병원에 모셔진 할아버지는 "인명은 하늘에 달려 있어" 이 한마디 조용히 남기고 떠나셨다. 84년 2월 28일자로 눈 못보는 형제를 위해 사망후 안구를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겨 27세 된 젊은 청년이 눈을 보게 되었다. 장례식은 1월 8일 오후 2시 3,000여명의 꽃동네 회원과 꽃동네 가족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청와대 김옥숙 영부인이 보낸 조화와 국무위원, 충남북도지사, 군수님이 보낸 조화속에 묻혀 명복을 비는 기도 소리를 들으며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라고 새겨진 바위 밑에 고이 인장되었다. 이제 최귀동 할아버지는 영원한 꽃동네 사람으로 모든 이의 가슴마다 남게 되었다. 1991년 1주기에는 그 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만들고 회원님들이 보내준 부의금으로 2.5m 높이의 동상을 만들어 제막식을 가졌다.